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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더 나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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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um_usan 작성일 25-11-19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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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더 나은 날들

초대전. 김승구

전시시간. 24시간 운영

전시기간. 2025년11월24일 월요일부터 2026년 02월23일 월요일까지

전시장소. 충남 천안시 동남구 각원사길 132, 갤러리 허송세월

Better Days

“I love the contrast of the packed pool and surroundings with the lonely river in the background of this view in Korea. A stunning example of how a high viewpoint, can offer so much detail and yet still have an overall impact. ”

Martin Parr

지난 40년 동안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룬 한국. 이례적인 경제 성장의 이면에는 다양한 사회적 모순 또한 생겨났는데, 그중 하나가 긴 노동 시간 끝에 주어지는 짧은 휴가이다. 물리적으로 제한된 시간에 장거리 혹은 장기간의 여행이 불가한 사람들은 긴 여행 대신 주말이나 짤막한 연휴를 활용해 도시주변에서 열리는 축제에 참여하거나 지역의 명소를 찾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계절에 따라 다채롭게 변화하는 풍경 속에서 물놀이와 낚시, 눈썰매 등을 즐기면서 가족, 친구, 연인과 추억을 쌓는데, 이 장면을 멀리서 보면 집단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집단적 여가가 가능한 첫 번째 이유로 ‘실용주의’를 꼽을 수 있는데 이는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와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단순히 빠른 일 처리를 넘어 현실의 제한적인 조건에 빠르게 적응하고 최대치의 능력을 발휘하거나 최대치의 만족을 추구하는 능동적인 몰입의 성격을 지닌다. 더불어 ‘산개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라는 유교의 현세주의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라는 불교의 허무주의가 결합해 우리의 민족정신에 큰 영향을 끼쳤고 ‘낙관적 허무주의’로 이어져 발달하면서 한국인의 실용주의적 성향은 더욱 강화되었다.

이러한 한국인의 성향은 센고쿠 시대 대혼란이나 지속적인 지진 등으로 불교에 의해 내세가 강조되어 온 일본이나, 국가 간 잦은 전쟁과 전염병(흑사병 등)으로 기독교 구원론이 전파되어 형성된 유럽의 가치관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군부 독재 시기의 민주화 운동부터 최근의 성공적인 코로나 방역까지 근현대에 일어난 여러 복잡한 사건들을 시민의 참여로 직접 해결하거나 극복한 경험을 토대로 현재까지 이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집단적 여가가 가능한 두 번째 이유로는 개인주의를 추구하면서도 특정 상황에서 강하게 연대하는 ‘공동체 지향적 개인주의(community-oriented individualism)’를 들 수 있다. 한국인은 두레, 품앗이, 제사 등을 중시하는 농경사회 문화와 충, 효를 강조하는 유교의 영향으로 공동체 의식이 뿌리 깊으면서도, 일제강점기와 이후 독재 정부에서 겪은 탄압에 대한 반발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열망했고 개인의 자유에 대한 강한 추구로 이어지며 복합적인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코로나 유행 당시 프랑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한국의 방역 성공을 두고 유교 문화에 의해 권위에 순응하는 한국인의 성향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팬데믹 상황에서 동일 문화권인 중국·일본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 것에 의문을 가진 한 방송사와 언론사가 공동 기획한 사회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민주적 시민성’과 ‘수평적 개인주의’가 높았기 때문에 시민들에 의한 적극적인 방역이 가능했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조사에 참여한 한 사회학자는 ‘민주적 시민성’이 높은 사람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동시에 공동체 지향도 강하다고 해석했다.

이 ‘공동체 지향적 개인주의’는 서양에서 정의한 ‘집단주의(collectivism)’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으며 ‘집단 이기주의’ 같은 부정적 측면이 아닌 ‘정서적 친밀감’을 기반으로 한 ‘집단 지향’의 성격을 지닌다. ‘정(情)’ 문화가 다소 관념적이고, '우리성(we-ness)'이 동질성이란 매개가 필요하기에 좁은 범주에서 논의된다면 ‘공동체 지향적 개인주의’라는 한국적 집단주의는 구체적이고 사회적이면서 앞의 두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Better Days〉의 사진 속 개별적 여가 활동은 이 ‘실용주의’와 ‘공동체 지향적 개인주의’의 토대 위에서 군집을 이룬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역사적 서사 속에서 견고하게 자리 잡은 한국인의 ‘공존의 질서’, 서로 참조하고 보완하며 일궈가는 공동체적 가치가 이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개인의 선택에 의한 평범한 여가 활동이 하나의 사각 프레임 안에 모이면서 수십, 수백 개의 순간으로 확장되고 배열되어 다층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공존하는 것이다. 이 ‘공존의 질서’는 한국인에게 너무 익숙해서 거의 의식되지 않으면서도 일정한 질서와 방향을 갖기에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보편적 삶의 질서는 예상치 못한 코로나의 습격으로 반전을 맞이한다.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났고 우울함을 떨치고자 찾은 여가 공간에는 공허함만이 가득했다. Better Days라는 삶에 대한 나의 낙관은 허무하게 무너졌고,

‘모든 것은 변화하며 정해진 것은 없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새로운 관계’가 ‘모두의 행복’이라는 가치와 이에 필요한 사회적 유대감을 드러낼 수 있을 거라는 나의 생각에도 의심을 품게 했다.

이런 나의 고민과는 무관하게 스마트폰의 발달로 누구나 행복한 순간, 기억할 만한 대상을 사진으로 찍어 간직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사각의 프레임 안에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아주 손쉽게 담을 수 있다. 이에 반해 나는 대형 필름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느리고 신중한 작업과정이 작업에 관한 의식을 일상으로 이어지게 하여 일상생활 속에서 그 의식과 사유를 지속한다. 이를테면 우연히 떠오른 아이디어를 천천히 판단하며 오래 고민하는 습관, 필름 홀더에 필름을 끼우며 현장의 상황을 예측해 보는 시간, 기대와 달라 허무했거나 뜻밖의 변수에 허탕 쳤던 기억, 촬영 후 현상하며 느꼈던 불안과 염원, 불만족스러운 결과물에 다음을 기약하던 마음 등이 담긴 애정의 산물이다. 이렇듯 한 장의 사진은 그 장면을 얻기 위한 물리적, 심리적 과정이 압축된 결과다.

수많은 첨단 제품과 새로운 콘텐츠가 점유한 인간의 삶 속에서 디지털 기기에 의해 사유의 시간을 잃어가고, AI에 의해 인간의 역할이 변화될 새로운 패러다임의 길목에 있는 지금, 인간적 사유를 지속하고 확장하며 인간이 주체가 된 세계관을 구축해가기 위해서 때로는 기술의 영역과 거리를 두고 인간 사회에 대한 관찰과 해석이 필요하다. 인간의 삶이 기술에 종속될수록 현실의 문제에 질문을 던지거나 해석하기 위한 인터페이스로서의 사진의 기능은 강화된다.

세상은 끊임없이 발전할 것이며 전염병과 같은 뜻밖의 변수는 어김없이 또 나타날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세상 속에서 잃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인간의 시대’를 하나로 바라볼때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공감과 신뢰를 통해 ‘공존의 질서’를 만들어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것이다. 천둥과 번개가 함께 일어나듯 과거의 총합인 현재 속에서 인간과 환경, 정신과 물질, 동양과 서양 등 전방위적으로 엮인 관계 속 새로운 의미를 파악하고 또 다른 질서를 찾아 진화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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